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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6월 2일_연중 9주간 수요일 강론2021-06-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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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이들의 하느님


62() 연중 9주간 수요일 

 


오늘 사두가이들은 예수님에게 아주 곤혹스러운 질문을 합니다

논리적으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려면 답이 없습니다. 막다른 길로 몰고 가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질문의 틀을 뛰어넘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르 12,25) 

우리가 어떤 문제를 풀려고 아무리 애써도 소용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문제를 그 문제를 제기한 틀과는 다른 틀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거나,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길을 잃어버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길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길을 새로 만드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는 종말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장가와 시집, 그러니까 혼인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중요한 방식 중의 하나입니다

종말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니 종말에 도래할 현실은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수도자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으니, 우리는 종말의 현실을 미리 세상에 보여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장가가지 않고 시집가지 않는 것만으로는, 독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세상에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수도자 말고도 많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의 수도 삶으로 무엇을 보여주는가, 보여주려고 하는가?”

 


정결의 삶은 형태는 독신의 삶이지만, 의도나 내용은 독신의 삶을 뛰어넘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세상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가?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초월할 수 있는가? 우리가 그럴 힘이 있을까?” 

정결로 우리는 자신을 하느님께만 묶고 그 연결로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나가려고 합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건 우리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결 서원으로 이러한 의사를 밝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려고 하면 하느님의 힘과 도움이 필수입니다

하느님의 힘이 작용되려면, 우리가 하느님을 신뢰하며 하느님이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마르 12,26). 

하느님의 이 호칭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는 이사악이 살아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사악의 하느님이십니다. 이사악이 죽었을 때는 야곱이 살아 있습니다. 하느님은 야곱의 하느님이십니다. 이 호칭에는 나오지 않지만, 야곱이 죽었을 때는 요셉이 살아 있습니다. 하느님은 요셉의 하느님이십니다. 요셉이 죽었을 때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하느님이십니다. 나중에 출애굽의 하느님, 해방의 하느님으로 밝혀집니다

이렇게 계속 내려오면, 오늘은 우리의 하느님, 내일은 우리 미래 세대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마르 12,27). 

죽은 이들은 세상에 부재하지만, 산 이들은 세상에 현존합니다. 죽은 이들의 하느님은 세상과 무관한 하느님, 죽은 이들과만 관계가 있는 하느님일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현존하시고 강하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산 이들의 하느님을 죽은 이들의 하느님으로 여기고 그렇게 살면 하느님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방식을 찾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강요를 하지 않기 때문에,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 하느님, 산 이들의 하느님께 온전히 우리를 열고 맡길 때,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관계를 함께 이루고 살며 세상에도 그 삶을 통해 사랑과 진리를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곧 있을 총회가 수녀님들이 수도자로서의 서원, 그 삶의 결의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회 조현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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