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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코로나 이후의 수도생활 전망_베아트릭스 수녀2021-03-2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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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Sisters Report 라는 미국 소재 웹진에 실린 베아트릭스 수녀님의 칼럼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 코로나시대 살아있는 성사로서의 수도생활

 

 

느닷없이 닥친 코로나로 인해 모든 관행들이 뒤집어지고 일상의 삶이 단절된 2020년은 매우 예외적인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바로 직전인 올해 18일부터 12일까지 로마에서 세계 빈첸시안 영성가족 대표자모임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1월 말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마치도 17세기 빈첸시오 성인의 시대로 다시 돌아간 듯 했다.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많은 사람들은 감염병으로 목숨을 잃고, 무차별한 바이러스를 막을 마스크가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마스크 대란으로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생필품을 사재기 하는 등 그동안 안전과 편리함 속에 진보와 발전의 길을 치닫던 세계가 순간 혼란에 빠지고 전 세계 사람들이 불안과 절망으로 동시에 넋을 잃은 듯 했다.

 

뉴스를 통해 사태를 파악하고 사태가 종식되기를 기다렸으나 다시 2차, 3차 감염의 폭풍을 겪고 제발 나아지기를 기다리며 지냈던 1년의 삶을 돌아본다. 이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 우리의 수도생활에, 구체적으로 공동생활과 사도직활동, 개인의 영성생활에 미친 변화와 수도생활에 대해 갖게 된 성찰들을 정리해본다.

 

 

수도회의 초기대응 방식

 

코로나에 대한 경험은 수도회 마다 다를 것이다. 공동체의 인구학적 조건과 수도원의 위치, 활동영역에 따라 다르게 경험할 것이다. 230명의 회원을 가진 우리 수녀회는 모원 바로 옆에 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50여 명의 회원이 900병상의 큰 병원에서 사도직을 하고 있다. 병원과 붙어 있는 모원에는 행정부와 함께 비교적 연로하고 허약한 50여명이 생활하고 있고 나머지 130명은 본당, 사회복지시설 등 외부 기관에 파견된 사도직과 해외에 배치되어 있다. 우리는 의료사도직을 하는 수녀회로서 다른 수녀회들에 비해서 코로나19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체험하였다. 병원 내에서 발생하였던 단 2명의 코로나19 환자로 인하여 환자 보호자 의료진 등 2000여명의 전수검사를 실시하고 2주 동안 병원이 전면 폐쇄당하는 일이 다른 병원에서 있었기에 많은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넘겼다.

 

처음에는 정부지침, 교회지침을 수동적으로 따르며 새로운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모두 처음 경험하는 현상이어서 즉각 대응이 어려웠다. 특히 초기에 우리나라에서 감염병이 확산된 것이 종교계 시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그 당시 국민들은 종교단체들에 대해 비우호적이었다. 다중이용 시설 중에 하나인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환자가 발생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수녀들은 각별히 조심하면서 위축되어 있었다.

 

중세의 역사에나 있는 줄 알았던 페스트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현실로 닥친 극적인 상황에서 주변에 질병의 위협이나 경제적 위기에 놓인 사람들이 많아 졌다.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약함과 무력감 중에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내몰린 듯 공동체적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나누고 수도원에서 간식을 만들어 내보내는 등 다양한 형태의 긴급구호에 참여하여 봉사와 나눔과 기부를 하였다.

 

 

기도에 대한 성찰

 

사순절 즈음 교회 전체가 미사를 중지하게 되었을 때 일반 성당의 미사 중지와 더불어 상주 사제가 없는 수녀원에도 미사를 중지하게 되었다. 감염방지의 목적도 있었지만, 미사에 가지 못하는 일반 신자들과 연대하고 신자들의 고통에 동참하자는 지향도 있었다. 대신 성체조배와 개인기도 시간을 더 갖게 되면서 그동안 우리의 영성생활이 사제 중심의 의례에 의존되어 있었음을 느끼게 되고 미사가 없는 동안 보다 말씀 중심으로 공동체 중심으로 기도생활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기회였다.

 

고정적인 구성원의 공동체인 본원은 비교적 보호되고 안전한 지대이고 병원 일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병원의 긴장과 진동을 함께 느끼고 나누면서 기도에 주력하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여건에서 분투하는 사도직 현장, 해외선교지에 있는 수녀님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몫을 더욱 새롭게 의식하게 되었다.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기도 자체도 정화되는 시간이었다. 개인의 내적인 평화와 위안을 주는 영적인 보상을 찾거나 자신의 유익과 필요에 중점을 둔 개인 성화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전구하면서 세상과 기도 안에 연대하게 되었다.

 

 

사도직에 대한 성찰

 

우리의 주 사도직인 병원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의료행위에 대한 정부의 관리 통제로 인해 자주 바뀌는 의료행정 체제에 맞추어 가다보니 병원운영에 부담을 안고 있으면서도 영성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의료기관 운영을 감당하기에 어렵다는 한계를 느끼면서도 많은 면에서 수도회와 긴밀하게 유착되어 있어서 병원운영 여부를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가운데 있다.

 

긴 박해시대를 벗어나 막 성장하기 시작한 우리나라 지역교회의 상황적인 필요와 요청으로 시작된 여성수도자들의 본당사도직은 한국교회의 특수한 상황이다. 이미 15년 전부터 한국 여성수도자들의 본당사도직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으나 수녀회들의 입장에서도 사도직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본당에서 수도자의 역할이 관행적으로 자리 잡혀 있어서 전환이 쉽지 않았다. 아직도 많은 수도자들이 본당에 파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데믹을 겪으면서 본당에 미사도 없고 신자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니 본당에서 수도자가 필요 없게 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수도원이 아닌 본당 분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자의 존재와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파견 사도직의 형태인 일반 병원의 원목활동도 코로나로 환자들을 만날 수 없게 되어 발이 묶이게 되니 모두 멈추고 사도직 현장에서 쓸모가 없어진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유치원, 사회복지 시설에 대한 정부의 관여와 감독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사람들을 돌보는 일보다 시설관리와 행정처리에 더 치중하게 된 갈등 상황 속에서도 미적거리던 기존 사도직들에 대해서도 재평가를 하면서 과연 수도자가 있어야 할 올바른 자리, 진정 수도자가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아가야 할 지금이 그 때인가 질문하게 된다. 코로나가 이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며 우리가 하고 있는 사도직에 대한 식별을 압박한다. 그러나 그동안 활동에 비중을 두면서 수도자로서 근원에 머물지 못하였던 점과 활동에 치중하여 이미 허술해진 공동체성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공동생활에 대한 성찰

 

미사와 시간경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수도원의 일과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미사 중단과 함께 병원에서 사도직을 하는 수녀님들 경우 공동기도와 공동식사 조차도 할 수 없는 사태는 시간표로 묶여진 수도원의 공동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여럿이 모이는 모임은 물론이고 모든 행사와 이동을 비롯해서 당연하게 여기면서 해왔던 일들이 연기되고 또 연기되다가 결국 취소되면서 연례적으로 계획되어 있었던 행사들과 그에 따른 외출과 모임이 그렇게 절대적이고 중요했을까 질문하게 된다. 수도원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온라인 미사와 비대면 소통 방식이 일상화되면서 소셜미디어 사용이 더욱 많아졌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인구의 95%나 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사도직을 이유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수도자들이 스마트 폰을 사용하고 있다. 기도생활을 위한 잠심에 방해가 됨은 물론이고 모두 연결되면서도 진정한 관계 안에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결속력은 오히려 약해진다. 모든 것이 급변하고 변화하는 속에서 고립되거나 많은 정보 속에서 갈피를 잃기 않기 위해서는 침묵과 기도 안에서 말씀을 듣고 성령 안에 이루어지는 소통,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 계산 없이 마음과 마음으로 나누어지는 친교를 찾아야겠다.

 

그동안 함께 모여서 공동으로 해오던 연례피정을 개인피정으로 돌려서 각자 삶의 자리에서 영상으로 하는 피정을 경험해본다. 공동체 회원 전체모임에 참석하기 어려웠던 해외 선교지의 회원들도 온라인으로 함께 할 수 있게 되고 그동안 장상들만 참석하던 해외의 서원식이나 행사들에도 온라인으로 국내의 회원들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예전에도 가능했던 일들을 그렇게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 안에는 코로나로 불가능한 일들도 있지만 불가능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일들도 더 있을 것이다. 외출할 경우 식당을 이용하기 보다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게 된 것도 불가능을 통해서 가능해진 작은 변화 중에 하나이다. 하늘 길이 막히고 보니 이런저런 회의와 모임, 정기방문과 주년교육자들의 해외성지순례 현장체험 등으로 이어졌던 해외여행이 당분간은 요원해졌다.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비행기로 여행하는 것은 가능하면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반면 어떻게 선교지의 회원들을 돌보고 영성가족들과 국제적으로 연대할 수 있을지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겠다.

 


생태적 회개로 실천하는 삼대서원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서 서로 들숨날숨을 나누며 살고 있고, 하나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게 되는 사실을 체험하고, 근본적으로 서로 이어진 생명이라는 분명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전 세계를 순식간 마비시킨 전염병에서 생태위기의 결과를 보고 앞으로 닥칠 기후위기를 예상하면서 75억의 인구가 공동의 집인 단 하나의 지구에서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자연환경파괴를 멈추어야 한다는 경각심도 커졌다. 위기가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반포 5주년과 코로나 사태를 맞아 환경 살리기에 대한 교회 안팎의 관심이 높아진 시점에서 이에 연대하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실천을 위하여 수도회의 JPIC 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생태적 회개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방식으로 더 많은 소비보다는 주어진 것에 자족하며 검소하게 사는 청빈과 이웃과 자연을 존중하고 돌보며 절제하는 정결, 창조질서를 존중하고 따르는 순명의 서원을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면서 수도생활의 의미는 외적인 활동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근원과 연결된 우리의 존재와 지금 여기서 살아내는 나와 너, 우리의 삶의 태도라는 확신이 커졌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기다리던 백신으로 코로나가 종식되고 일상을 어느 정도 회복한다 해도 이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 대 전환의 시기라는 인식이 분명해진다. 무분별한 개발로 얼룩진 세계화의 문제성과 기후위기, 사회의 양극화 등 한번은 거쳐야 하고 반드시 짚고 가야할 문제들이 코로나로 인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이 시기에 우리 공동체는 총회를 앞두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큰 위기를 겪고 나면 삶에 대한 인식과 방향이 바뀌고 한 단계 성숙을 이루듯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로 정해진 총회 주제에 따라 지난 일 년 코로나의 위기에 가졌던 경험과 인식을 토대로 지금까지의 고착된 생활방식을 바꾸는 기회로 삼고 활동을 중심으로 기울어 균형을 잃었던 수도생활이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성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이번 총회는 여느 총회보다 새로운 획을 긋는 총회가 될 것을 기대한다. 수도회 내부적으로도 새로 들어오는 입회자가 급격히 줄고 공동체의 고령화가 더 가파르게 진행되어 그동안 유지하던 생활양식에 변화가 불가피하고 외부적으로도 우리가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자리, 우리가 있어야 하는 자리를 다시 찾아서 선택하고 집중해야 하는 때이다.

 

코로나라는 공동의 체험으로 지구와 지구촌 전체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일깨움으로써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난다. 이런 비전으로 여성 수도자들은 상처 입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연결점이 되어주어 다급한 시대적 요청에 응답할 수 있겠다. 소외된 이들은 점점 늘어나 그들의 공동체는 더 커짐에도 불구하고 이 네트워크를 이용할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그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연결점이 되어주는 것이다. 세상으로부터의 분리가 수도생활의 출발점이었고, 코로나로 인해 다시 그 경험을 하게 된 우리는 이제 어디에 연결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여기는 일상은 우리 수도자들이 이미 잃어버렸어야 했을 일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원문 링크

https://www.globalsistersreport.org/news/coronavirus/column/new-wine-new-wineskins-religious-life-post-coronavirus-era?fbclid=IwAR20zny0IMjk4XPhhPh7AxpXdoFi-w425QV8JLcnvTGY89lnJ-xVTnySG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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