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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발을 씻어준다는 것_성목요일강론2021-04-0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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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목요일, 발을 씻어준다는 것

 


만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곧 떠나야 하고, 남은 시간이 오늘 저녁 뿐이라면, 나는 이들과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의 복음을 보며 떠오른 질문입니다.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한 끼의 밥을 같이 먹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행동에 제자들은 당혹스러워한 듯합니다. 자기 발을 씻는 것은 일상이지만, 다른 사람이 발을 씻겨주는 것은 일상이 아니지요. 그래서 누군가 발을 씻어주겠다고 나서면 우리도 당혹해할 것입니다. 당혹스러움은 베드로의 반응에서 잘 나타납니다. “제 발은 절대 씻지 못하십니다”(요한 13,8). 팔레스타인은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지역이고, 당시에는 주로 샌들을 신고 다녔다고 하니 사람들의 발은 먼지가 많았을 겁니다. 덤벙대는 성격의 베드로는 발이 더 지저분해서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목요일 발 씻김예절에 뽑히면, 발을 씻어준다는데도, 아니 발을 씻어준다니까, 미리 발을 씻고 옵니다. 평소보다 더 깨끗하게 씻고 옵니다.

 

손을 씻어준다고 하면, 쑥스럽긴 해도 발보다는 덜 할 것 같습니다. 발이란 그런 곳입니다. 발은 얼굴이나 손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가고, 왠지 지저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도 잘 보지 않으니, 남에게는 더 보여주지 않으려 합니다. 발은 은 가장 많이 하지만 대접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신체 부위입니다. 아파야 겨우 들여다봅니다. 그러니 느닷없이 발을 씻겨준다고 하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발을 씻을 때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해봅니다. 실랑이 끝에 제자들은 있는 그대로 먼지투성이의 발을 내밀었을 것이고, 예수님은 일상의 삶에 지친 그들의 발을 보듬고 씻겼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쑥스럽고 민망해하던 제자들의 마음도 예수님의 손길을 따라 그분의 마음을 읽으면서 차츰 변하지 않았을까? 당시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요한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죽을 때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그분의 손에서 제자들의 발로 전해집니다. 본인들도 별로 관심을 쓰지 않는 자신들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시는 손길에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체험을 합니다.

 

온전히 받아들여짐은 제자들에게 매우 소중한 체험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별 볼 일 없는사람들에 속했을 겁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그나마 있는 것을 다 버리고 나선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달리 갈 곳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체험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위로와 힘찬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수도자인 우리도 비슷한 처지일 겁니다. 남은 거라곤 여기밖에 없는 우리에게, 바로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가 받아들여진다는 체험은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날이라면 예수님은 누구의 발을 씻기려고 하셨을까? 아마도 예수님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을 하지만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 ‘같은 사람들에게 먼저 가셨을 것 같습니다. 들자면 끝이 없지만, 코로나19와 최전선에서 씨름하는 의료진들, 비대면 사회를 지탱하는 택배기사들, 부당한 처우 속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모두가 가장 열심히 일하는, 우리 몸의 같은 존재입니다. 발이 없으면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우리 사회는 발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 대단히 인색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눈치채신 것 같지만 그런 유다의 발도 씻어주셨습니다.

 

온전히 받아들여짐은 아마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체험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발을 내놓지 않으려는 베드로에게 단호한 말을 한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8) 그렇게 되면,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에게 꼭 필요한 체험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 온전히 받아들여짐을 체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의 발을 씻어줄 때 가능합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예수님의 당부였습니다.

 

그렇게 하고는 싶지만, 아직은 준비가 덜 됐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한 것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밥을 먹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 살면서 정말 소중한 것들은 먹고 씻는 것과 같이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평범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언제나 해줄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게 할 만큼의 힘과 여유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는 결국 두 가지의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선택 그리고 사제와 레위인의 선택입니다. “고통을 떠맡는 사람과 멀찍이 지나쳐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모든 형제들> 70). 어떤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고, 어떤 사람은 돌아서 자기가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

 


- 예수회 조현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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