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5일, 로마 빈첸시안 가족 여러분께
“누가 이 일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성 빈첸시오 드 폴의 감사로 가득한 경이로움
빈첸시안 가족 모두를 위한 선물
사랑하는 빈첸시안 가족 여러분
우리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매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대축일이 되면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할 일이 일어
납니다. 모든 대륙에서,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한 아버지의 자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전교회 사제들과 수사들, 사랑의 딸들, 성 빈첸시
오에게서 영감을 받은 많은 수도회의 남녀 수도자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 국제 사랑의
부인회, 빈첸시안 마리아 청년회, 기적의 메달회, 평신도 빈첸시안 선교사 회원들입니다.
우리는 본당과 병원, 학교, 무료 급식소, 난민 캠프, 교도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거리,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 현장 등 성 빈첸시오께서 우리를 보내신 곳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모든 곳에서 함께 축하하며 축일을 기념합니다. 4세기가 지났지만 그 발걸음은 느려지지 않았습니다. 빈첸시오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함께 걸으며, 그분의 목소리는 우리가 바라봐야 할 얼굴을, 두드려야 할 문을, 잡아주어야 할 손을 가리키며 이끌어 줍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충분히 해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빈첸시오를 연구하고, 강론과 모임에
서 그분 말씀을 인용하고, 그분의 편지와 훈화를 분석하며, 우리의 필요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저 잠시 멈추어 그분께 감사드린 적이 있습니까?
잠시 멈추어 그분의 거룩함이라는 선물에 감사드린 적이 있습니까? 그 거룩함은 추상적인 완덕이 아니라,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살아낸 삶이었으며, 길고 긴 나날과 어려운 결정들, 일
상의 충실함으로 이루어진 거룩함입니다. 그분의 은사라는 선물에 감사드리기 위해서는요? 가난
한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었던 그분의 눈길, 바로 그 눈길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럴 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분의 영성이라는 선물에 감사
드리기 위해서는요? 구체적이고 소박하며 꾸밈없는 그분의 삶은 수많은 세대에게 예수님 앞에
서는 법과 가난한 이들 앞에 서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같은 마음의
움직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신앙의 첫 언어입니다. 빈첸시오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받은 모든 것, 곧
성소와 소명, 만남, 심지어 시련까지도 그분을 섭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감상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결코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오늘, 그 어떤 결심이나 계획에 앞서, 빈첸시안 가족 전체가 이 문턱 앞
에 잠시 멈추어 서기를 바랍니다.
잠시 멈추어, 우리가 감사드리는 그 선물들을 함께 묵상해 보도록 초대합니다. 그 선물은 한 사
람의 마음속에 불을 붙였고, 한 가족으로 번져 갔으며, 마침내 교회에 맡겨졌습니다. 성령께서는
단 한 번의 속삭임으로 개인과 공동체와 교회, 그 모두에 숨결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은사와 영성은, 우리가 알다시피, 생각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체험에서 생겨납니다. 빈첸시오가 만들어 낸 교리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낸 삶이었습니다. 그가 있던 바로 그 삶의 자리, 보잘것없는 출신의 삶을 살아간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빈첸시오는 이 사실을 결코 숨기지 않았습니다. 1633년 전교회의 한 사제에게 "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입니다."라고 썼고, 그를 "몬
시뇰"이라 부르며 자선을 청하는 한 여인에게는, 자신은 그저 가난한 돼지치기, 농부의 아들이
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거짓된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받은 선물이 자신의 그 어
떤 공로에서도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사람의 분명한 인식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빈첸시오는 처음에 막 싹트고 있는 일에 대해 자신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전교회의 시작을 회원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아무도 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선교가 뭔지도 몰랐고, 생각조차도 안 했으며, 그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습니다.”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모든 것의 핵심이 되는 결론을 끌어냅니다. "바로 그 점
에서 이 일이 하느님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인간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 그
일을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그 일은 그분에게서 직접 오는 것입니다.” (1655년 1월 25일 기
도의 반복, 전교회 회원들에게)
여기에 은사와 영성의 첫 번째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개별적이라는 점이지요. 은사와 영성은
그 목적을 이해하기도 전에 먼저 이름을 불러 주시는 부르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빈첸시오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받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빈첸시안 성소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빈첸시오는
아라스Arras로 파견되는 자매들에게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점을 정확하게 표현했습니다.
“00 자매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닙니다.” (1656년 8월 30일, 사랑의
딸들에게 한 훈화) 빈첸시오는 사랑의 딸들에게 자신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부르심에
대한 경이로움을 간직하며 기도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우리처럼 보잘것없는 피조물이 주님을 섬기기를 바라셨다니, 누가 이런 일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1658년 6월 9일, 사랑의 딸들에게
한 훈화)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의 소명을 우리가 맡은 역할로서가 아니라,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본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습니까?
하지만 은사는 개별적인 부르심에서 비롯되지만, 결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름을 불러 주시는 부르심을 받는 순간, 우리는 곧바로 함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은사는 하나의 몸인 공동체, 각 사람의 얼굴,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필요합니다. 이러
한 일은 처음부터 곧바로 일어났으며, 빈첸시오는 이를 놀라울 정도로 분명하게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사랑의 딸들에게 회칙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회칙을
정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셨다고 해야겠습니다. 하느
님께서 여러분에게 회칙을 주셨다고는 말을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고는 설립자가 할 수 있
는 가장 아름다운 말을 덧붙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그것을 생각하셨습니다. 자매
여러분, 그분께서 여러분 회의 설립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643년 6월 14일 사랑의 딸들에
게 한 훈화)
그러므로 은사와 영성은 공동체와 친교를 낳습니다. 이것이 빈첸시오가 빈첸시안 가족 전체를
위해 꾸었던 꿈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모습이 … 우리 안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1642년 6월 27일 전교회 회원들에게 한 훈화)
마지막으로 은사와 영성은 교회에, 교회 안에서, 교회의 선교사명을 위해 주어집니다. 빈첸시오
는 우리의 소명은 그리스도의 소명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고, 가난한 이들이 바로 우리의 유산
이라고 말하며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는 것이 전교회
회원들이 지닌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는 숨을 몰아 이어 덧붙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아드님
이 이 땅에서 하셨던 일을 하늘에서 계속하시는 데 쓰이는 도구로서 그 일(하느님의 아드님의
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1658년 12월 6일 전교회 회원들에게 한 훈화) 우리는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명을 계속 이어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빈첸시오는 언제나 이러한 교회의 비전을 구체적이고 확인할 수 있는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아라스로 파견되는 두 자매에게 단순히 이상만을 맡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매들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주교님에게 가서 “그분의 축복을 청하고 그분의
지시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656년 8월 30일 사랑의 딸들에게 한 훈화) 은사와 영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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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구체적인 교회 안에, 즉 교구 안에, 본당 안에, 목자들의 인도 아래에 뿌리를 내립니다.
이 세 가지 측면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동체가 없는 개인적인 은사는 한 사람
의 열정 속에서 소진되고 맙니다. 교회적 개방성이 없는 공동체는 자기들끼리 따뜻함을 나누는
폐쇄적인 울타리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교회적 차원이 각 사람의 마음을 다시 타오르게 하지
못한다면, 그저 종이 위에 쓰인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부르심을 받아, 함께 모여, 우리 자신을 넘어 세상으로 파견되는 것. 이것이 빈첸시오가 받아 우리에게 전해준 움직임이자 활동입니다. 그리고 이는 바로 복음의 움직임이자 활동이며, 4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가 여전히 감사드리는 이유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기억에만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과제가 됩니다. 그런 이유로, 제가 느끼기에 오늘날 빈첸시안 가족에게 긴급한 세 가지 도전 과제를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가난의 얼굴들
성 빈첸시오는 가난한 이들의 목록을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고,
알아보고,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울부
짖음, 소외된 이들의 침묵 속의 고통, 전쟁의 상처, 기후변화의 영향, 수많은 사람의 존
엄성을 빼앗는 불평등이라는 추문, 디지털 세계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의 소외감, 자
연재해가 발생한 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곤경을 마주하며 도전을 받고 있습
니다. 이처럼 엄청난 도전 앞에서 선한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응답을 마련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2. 빈첸시안 가족의 여러 단체 사이의 친교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저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를 이끄는 것은 남보다 더 앞서려는 욕망이나 자기 영역을 지키려
는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단순하고 복음적인 열망, 곧 함께 행동하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각 단체가 저마다 하나의 은사를 가져와 그 은사를 서로 나눌 때만 그 은사는 온
전히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친교, 공동 식별, 협력, 선교사명, 이것이 바로 시노드 교회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길이며, 여전히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문턱과 경계를 넘어가도록 촉구하는 길입니다.
3. 양성
저는 빈첸시안 가족의 모든 단체가 지속적인 양성 프로그램을 검토하기를 요청합니다.
그 원천과 역사, 무엇보다도 빈첸시안 은사와 영성의 빛으로 일상의 체험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각 나라와 관구에서, 그 지역에
있는 모든 단체가 협력하여 빈첸시안 양성 센터를 개발할 것을 장려합니다. 어느 한 단
체 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동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이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상설 장소도 마련하고,
각 지역의 실제적인 필요에 맞춘 연례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함께 걸어가고, 서로를 양성하며, 더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담대하면서도
겸손하게 협력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린 이 도전 과제들은 지켜야 할 의무 사항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불을 붙여 나아가게 하는 초대입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이 도전에 응답하도록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함께 길을 걸어가는 것이며, 그 길은 우리가 걸어가는
가운데 펼쳐집니다. 성 빈첸시오는 완성된 계획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만남, 곧 얼굴과
이름을 지닌 한 가난한 이와의 만남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나머지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써 내려가시도록 맡겨 드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소명이 지닌 아름다움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우리에게 비범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으라고 요청합니다. 우리에게 쉬운 길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줍니다. 그러니 두려움 없이,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
올해는 제112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과 겹치는 성 빈첸시오 드 폴 대축일을 영적으로 준비
하기 위해 전교회 홍보국은 “이주민과 난민”을 주제로 성 빈첸시오 9일 기도를 준비할 예정입
니다. 2026년 9월 18일부터 전교회와 빈첸시안 가족 소셜미디어 계정에 그 기도문을 게시할 예
정입니다. 이 자료는 PDF 파일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 https://congregatiomissionis.org/novena-san-vincenzo-de-paoli/
스페인어: https://congregatiomissionis.org/es/novena-san-vicente-de-paul/
영어: https://congregatiomissionis.org/en/novena-saint-vincent-de-paul/
프랑스어: https://congregatiomissionis.org/fr/neuvaine-saint-vincent-de-paul/
같은 말씀으로 일치되어 우리는 하나입니다!
빈첸시안 가족의 박동하는 심장과 같은 마음을 세상에 진정성 있고 깊이 있게 전하기 위해, 전
교회는 특별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한 분을 초대하여, 한 달 동안 모원 공
동체와 가까이 지내며 함께 생활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눔과 일상 속 동행이라는 이 특
별한 체험을 통해 다큐멘터리 “Au Cœur de Paris 파리의 심장”이 탄생했습니다.
마누엘 드 테페Manuel de Teffé가 각본과 연출을 맡고, 가브리엘레 크로치Gabriele Croci가 특별
히 작곡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으로 풍성함을 더한 이 다큐멘터리는, 관객들이 모원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발견하고, 감상하고, 사랑하도록 고안된 시각적이고 정서적인 여정을 제공합니
다. 이 영화는 짜임새 있고 흥미로운 서사를 통해 전개됩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시청자를 모원의
장소와 분위기 안으로 이끌고, 1부에서는 모원의 “주인”인 성 빈첸시오 드 폴에게 깊은 경의를
담았으며, 2부는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원 건물의 역사를 따라가며
특히 성당을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3부에서는 시선을 바깥세상으로 돌려, 이곳에서 시작되어 끝
없이 뻗어나간 선교 활동을 기리고, 4부에서는 현재의 모원을 보여주면서, 대부분 사람들에게 알
려지지 않은 뤼 드 세브르rue de Sèvres 거리와 뤼 뒤 박rue du Bac 거리의 역사적 연관성을 조명합니다. 다큐멘터리는 마지막으로 선교 현장과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따뜻함과 친근
함을 더해주는 짧은 인터뷰로 마무리됩니다.
전 세계 모든 빈첸시안 가족과 역사 및 영성에 관심있는 이들이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이 다큐멘터리를 여러 언어로 번역할 예정입니다.
현재 영어 버전은 이미 전교회Congregatio Missionis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기적의 메달의 성모님과 성 빈첸시오 드 폴, 빈첸시안 가족의 모든 성인과 복자,
하느님의 종들의 전구에 맡겨드립니다.
성 빈첸시오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
토마즈 마브릭 신부, 전교회
번역: 사랑의 씨튼 수녀회 진선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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