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빌라도의 법정은 오늘날 ‘현세적 이익과 경제적 효율성’만을 앞세우는 차가운 재판석과 같습니다. 세상은 자본의 잣대로 인간의 존재 가치를 평가하며, 생산성이 낮거나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많은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사형 선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인 일터에서 내몰린 해고 노동자들의 절망 속에는, 자본의 논리를 묵인하는 우리의 무관심이 서려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가치 없다'고 낙인찍히는 그들의 고통에 온전히 동참하고 계시며 그 '버려진 이들'의 얼굴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정의와 자비의 주님, 저희가 세속적인 가치을 우선하며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함을 훼손하지 않게 하소서.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폭력 앞에 침묵하지 않게 하시고, 가장 낮은 곳으로 밀려난 이웃 안에서 수난하시는 당신을 알아보는 신앙의 눈을 갖게 하소서.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에는 오늘날의 기후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무게가 실려있습니다. 탄소를 마음껏 배출하며 풍요를 누린 이들이 따로 있고, 그 대가로 발생하는 가뭄과 홍수, 생태계 파괴의 짐을 온몸으로 짊어지는 가난한 이웃과 미래 세대가 따로 있는 이 불의한 현실이 바로 오늘날의 십자가입니다. 자신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 비틀거리는 이 땅의 모든 약한 이들과 함께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몸소 지시고 골고타로 향하십니다. 수난의 길을 걸으시는 주님, 우리가 누리는 안락함과 편리함이 누군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소서. 내가 선택하는 편리함과 내가 소비하는 많은 자원들이 지구 반대편 가난한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십자가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절제와 나눔의 길로 돌려세워 주소서.
제3처: 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를 외치는 무한 경쟁의 속도 전쟁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쓰러집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물건을 나르다 기력이 다해 넘어진 택배 노동자, 화장실 갈 시간조차 아껴가며 기계를 돌리다 다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거친 숨소리가 십자가와 함께 쓰러지시는 주님의 눈물에 담겨집니다. 세상은 그들의 넘어짐을 개인의 불운이라 말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이 쓰러진 차가운 바닥에 당신의 얼굴을 대고 그들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내십니다. 연약한 이들의 힘이신 주님, 효율성이라는 채찍에 맞으며 쉼 없이 달려야 하는 이 시대의 모든 노동자를 기억합니다. 저희가 눈앞의 편리함 뒤에 숨겨진 누군가의 희생을 잊지 않게 하시어. 속도보다 방향을, 이윤보다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가는 데에 깨어있게 하소서.
제4처: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길 위에서 아들과 어머니가 마주합니다.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성모님의 고통은, 차가운 산업재해 현장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통곡과 맞닿아 있습니다. "안전하게 다녀오겠다"던 마지막 인사가 영원한 이별이 되어버린 그 비참한 현실 앞에서, 어머니들은 아들이 쓰러졌던 그 위험한 일터의 어둠을 가슴에 묻습니다. 자식의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던 성모님의 심장은 오늘날 구조적 폭력과 무관심 속에 스러져간 젊은 생명들을 품고 오열하는 부모들의 가슴 속에서 다시금 갈기갈기 찢겨 나갑니다. 위로자이신 주님, 자녀를 가슴에 묻고 고통에 우는 이 땅의 어머니들을 굽어살펴 주소서.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삶의 끝에서 차가운 기계 사이에 몸이 끼이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 숨진 자녀들의 이름을 당신의 생명책에 깊이 새겨 주소서. 저희 또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동반자가 되게 하시고, 다시는 이 땅의 부모들이 일터로 나간 자녀의 죽음을 마주하지 않도록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저희의 마음을 모으게 하소서.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위험과 고통마저 낮은 곳으로 떠넘기는 '고통의 외주화'가 만연한 세상에서, 키레네 사람 시몬은 수난하시는 주님의 길에 뜻하지 않게 그 고통의 무게를 나누어 집니다. 진정한 연대는 내가 가진 여유를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의 편리함을 포기하는 '기꺼운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남의 고통을 구경만 하는 관객이 아니라, 억울하게 지워진 타인의 짐 밑으로 내 어깨를 밀어 넣는 수도자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허락해 주소서. 사랑이신 주님,
저희가 타인의 불행을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하며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이웃의 십자가 곁으로 저희를 부르실 때, 주저하지 않고 그 길의 여정에 오르게 하소서. 연대의 현장에서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저희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질 때, 비로소 이 세상의 무거운 무게가 사랑으로 가벼워질 수 있음을 믿게 하소서.
제6처: 베로니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거대한 구조적 악과 냉혹한 법 집행 앞에서 베로니카가 내민 한 장의 작은 수건은 너무나 무력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베로니카는 숫자로만 기록되는 낯선 땅의 난민들,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혐오의 그늘 속에 숨죽인 소수자들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살아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합니다. 혐오와 차별의 먼지에 가려진 이들의 존엄을 사랑의 손길로 닦아낼 때, 일그러졌던 주님의 얼굴은 우리 가운데서 다시 빛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베로니카의 수건 앞에서 저희의 부끄러운 모습을 고백하나이다. 저희 안에도 낯선 이를 경계하고, 나와 다른 이를 밀어내며, 효율과 편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판단했던 혐오와 차별의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음을 고백하오니, 주님 친히 저희 마음의 눈을 닦아주소서.
제7처: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거대 자본의 폭력과 일방적인 국책 사업 앞에 평온했던 마을 공동체가 처참히 무너지는 이 시대의 풍경이 주님의 두 번째 넘어지심 속에 겹쳐집니다. 초고압 송전탑 아래서 밤잠을 설치며 생존을 호소하는 이들, 핵발전소 옆에서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으며 불안에 떠는 이들, 그리고 끝없는 개발의 논리 앞에 정든 터전을 빼앗긴 원주민들의 삶은 거듭 쓰러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저항해도 다시 짓밟히는 약자들의 반복되는 좌절, 그리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채 효율성만을 좇는 우리 사회의 냉담한 무관심 아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거듭 넘어지십니다. 희망의 근원이신 주님, 반복되는 불의와 거대한 권력 앞에 무기력해져 포기하고 싶은 이들을 굽어보시어, 무너진 터전 위에 다시 생명의 집을 짓게 하소서. 저희가 도시의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 누군가의 고향이 파괴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창조 질서를 보존하며 이웃의 아픔에 연대하는 생태적 회개로 나아가게 하소서.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는 고통의 길 위에서도, 주님께서는 당신을 동정하며 우는 여인들을 오히려 가엾이 여기시며 말씀하십니다.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우리 또한 진정 마음 아파해야 할 것은 당장의 작은 불편함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쓰레기 산과 병든 바다, 그리고 불의한 세상을 모른 척했던 저희의 무뎌진 양심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파괴된 자연 속에서 신음할 자녀들의 내일을 바라보시며, 오늘 저희의 삶이 생명의 길로 되돌아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경제 발전이라는 탐욕에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이제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라는 간절한 초대에 눈물로 응답드립니다. 심판자이신 주님, 파괴된 환경과 빚더미 유산을 물려받을 미래 세대에게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눈앞의 편리함에 마음을 빼앗겨, 정작 미래 세대들이 마음껏 누려야 할 푸른 자연과 평화로운 미래를 소중히 지켜주지 못한 저희의 허물을 용서하소서.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골고타 언덕의 가파른 끝자락에서 예수님은 다시 땅으로 쓰러지십니다. 이제는 다시 일어날 힘도, 버틸 기운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토록 무력하게 쓰러진 주님의 모습에서 가난 때문에 막다른 길에 내몰린 가난한 이웃들을 봅니다. 난방비가 무서워 냉방에서 겨울을 견디는 에너지 빈곤층, 누구의 배웅도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 노인들, 햇볕 한줌 들지 않는 고시원, 쪽방촌에서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간의 최소한 존엄마저 마모된 이들의 절규가 주님의 세 번째 넘어짐 속에 젖어듭니다. 더 이상 일어설 힘조차 없는 이들의 마지막 외침이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집니다.
가장 낮은 바닥까지 내려오신 주님,
벼랑 끝에 서서 떨고 있는 가난한 이웃을 품게 해 주소서. 가까운 이웃의 빈 방과 외로운 눈물을 기억하며 나누는 저희의 작은 정성이, 절망에 빠진 이웃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희망의 불꽃이 됨을 기억하게 해 주소서.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님께서는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시어, 지녔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알몸을 드러내는 극도의 수치와 모욕을 견디십니다. 주님의 그 벌거벗겨진 몸 위로, 오늘날 자본의 탐욕 아래 모든 생명력을 수탈당해 맨살로 드러나는 지구의 수난이 겹쳐집니다.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푸른 숲의 옷을 벗겨내고, 산맥의 허리를 베어내며, 강물의 흐름을 막아 세우는 인간의 오만함이 예수님을 다시금 발가벗기고 있습니다. 본래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잃은 채 파헤쳐진 대지와 함께 상처 입은 모든 창조세계는 이제 옷 벗김 당하신 주님의 수난 속으로 함께 나아가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가난해지신 주님,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심 때문에 당신이 선물하신 창조 세상의 신비를 모독했던 저희의 무지를 용서하소서.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보살펴야 할 형제요 자매로 바라보는 마음을 주소서.
저희의 탐욕으로 상처 입은 온 세상이 본래의 영광스러운 빛을 되찾게 하시고, 저희 또한 당신의 겸손을 본받아 모든 생명을 소중히 보듬는 청지기가 되게 하소서.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보이지 않는 법과 구조가 청년 노동자들의 몸에 못을 박습니다. 안전보다 비용 절감이 우선이라는 거대한 폭력의 십자가에 못 박혀, 빠져나오지 못한 채 희생되는 수많은 '김용균'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둔탁한 망치 소리는 오늘날에도 일터 곳곳에서 울려 퍼지며 생명의 가치를 난도질합니다. 주님의 비명은 바로 그 불의한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희생자들의 절규와 하나가 되어 하늘을 가릅니다. 수난하시는 주님, 사람의 생명을 이윤과 맞바꾸는 이 시대의 악행을 멈추게 하소서. 구조적 폭력이라는 못을 하나하나 뽑아내고, 일하는 사람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당연한 정의가 실현되게 하소서. 또한 우리도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 기쁘게 동참하게 해 주소서.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가장 높은 곳이 아닌, 가장 낮고 비참한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숨을 거두십니다. 주님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 모든 생명의 고통과 결합합니다. 주님은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의 풍요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이 죽어야 하느냐?" 우리의 이기적인 생활 양식과 끝없는 소비 욕구가 십자가 위에서 함께 죽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부활은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돌아가심은 무한 성장의 신화와 끝없는 소비의 욕망이 춤추는 낡은 세상을 끝내고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새로운 전환'의 시작입니다. 우리를 휘감는 이 착취적인 생활 양식이 주님과 함께 죽음으로써, 비로소 모든 피조물이 함께 살아가는 부활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생명의 주님, 당신의 죽음 앞에서 저희의 오만함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죽어야 할 것은 죽고 버려야 할 것은 기꺼이 버리는 용기를 주시어, 이윤보다 생명이, 탐욕보다 나눔이 우선되는 정의로운 전환의 길로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저희의 삶이 먼저 죽어 세상의 밀알이 되게 하소서.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차갑게 식어버린 아들의 몸을 말없이 품어 안으신 성모님의 그 비통한 몸짓 앞에서 우리의 마음도 멈추어 섭니다. 작업장에서 홀로 쓰러진 노동자의 고독한 죽음이, 그리고 차가운 바다 위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난민의 서글픈 시신이 성모님의 가슴에 함께 담겨집니다. 죽음 이후의 정의는 이들의 죽음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깊이 아파하며 그 곁을 지키는 ‘따뜻한 애도’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의 고통을 우리 사회의 공동 책임으로 받아들이며 소외된 죽음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성모님의 품이 그러하셨듯, 우리 또한 이들을 위한 자비의 품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자애로우신 주님, 저희가 유가족들의 무너진 마음을 위로하며 내 가족의 아픔으로 가슴에 새기게 하소서. 사람을 무엇보다 먼저 귀하게 여기는 사랑의 법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다시는 억울한 눈물로 삶을 마감하는 이가 없는, 생명의 안전한 품이 되는 나라를 저희의 손으로 일구게 하소서.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님, 당신께서는 이제 차가운 돌무덤 속에 침묵하며 묻히십니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이 고요의 자리에서, 오늘 함께 살아가는 길 위에서 밀려난 이들의 아픈 얼굴들을 내 마음의 무덤에 함께 모십니다.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의 절망과 수탈당한 대지의 신음, 고립된 방에서 홀로 추위를 견디던 노인의 고독과 낯선 땅을 헤매는 이주민들의 두려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난민의 눈물까지, 이 모든 아픔의 기억들을 외면하지 않고 우리 깊은 가슴 속에 소중히 묻습니다. 그러나 이 무덤은 죽음이 머무는 끝이 아니라, 착취와 배제의 낡은 질서가 죽고 생명과 정의의 새로운 세상이 움트는 전환의 자리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 무덤 속 어둠을 뚫고 빛으로 오실 당신을 기다리며, 우리 또한 이 땅의 모든 이웃과 피조물이 함께 일어나는 부활의 길로 기쁘게 나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부활의 희망이신 주님, 우리가 절망의 무덤 앞에 주저앉지 않게 하소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걷는 이 길이 비록 두렵고 절망적이어도 결국 당신의 빛나는 생명이 승리할 것임을 믿습니다. 깨어 기도하며, 부활의 기쁨이 온 세상 피조물에게 가득할 날을 향해 꿋꿋이 나아가게 하소서.
'어두운 변방에 희망의 새벽을 여는 사순시기'가 되도록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묵상하도록 올리베따노 수녀회에서 마련하신 묵상 내용에 맞춰 본원 영적담화 3그룹에서 준비한 슬라이드를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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