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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빈첸시안가족 축일편지_토마즈 마브릭 신부2023-09-2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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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빈첸시안 가족 여러분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늘 함께 하길 바랍니다!

2023년은 빈첸시안 가족 모두에게는 빈첸시안 가족 운동과Vincentian Family Movement 더불어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이 된 마드모아젤Mademoiselle 르그라Legras성령 강림의 빛Light of Pentecost” 신비 체험 400주년을 경축하는 특별한 해입니다.

성 빈첸시오 드 폴 축일을 준비하면서 이 특별한 체험과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강하게 경험하고 있는 이 체험의 풍성한 은총에 대해 숙고하고 묵상하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어 참으로 좋습니다.

저는 사랑의 딸회 총장인 프랑스와즈 프띠트 Francoise Petit수녀님께 루이즈 성녀의 삶을 변화시킨 이 사건에 대해 숙고의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실 때 단지 이 일을 하나의 역사적 일이 아닌 오늘날 우리 각자의 삶과 다가올 다음 세대의 삶에서 육화되어야 할 사건으로 읽어 주십시오.

 

성녀 루이즈와 성 빈첸시오! 저희를 위해 계속 빌어 주소서!

 

성 빈첸시오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

토마즈 마브릭Tomaz Mavric, 전교회 총장 신부 드림

 



162364일 성령 강림 대축일, 한 아들의 어머니인 젊은 기혼 여성이 파리의 성 니콜라 대 샹꼴Saingt-Nicolas-des-Champs 성당에 들어섰습니다. 슬프고, 혼란스럽고, 우유부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이 여인은 성령의 영감에 자신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영적이고 선교적인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훗날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이 될 르그라Legras 부인이었습니다. 그 때 그녀는 다시는 홀로 남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성령께서 활동하실 자리를 남겨 두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향했고 그 이후로도 몇 날 몇 년 동안 피할 수 없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또 성 빈첸시오 드 폴과 함께 사랑의 딸회를 세우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감사하기 위해 20236 4일 희년Jubilee을 시작했습니다. 희년은 우리에게 이 근본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우리의 영적, 선교적 추진력을 강화할 기회를 안겨줍니다.

성녀 루이즈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이 사건이 각 사람의 마음에 그리고 오늘날 빈첸시안 가족 전체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말해주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1623, 한 성당의 감실 앞에서 루이즈가 기도했던 이 순간은 온전히 받은 삶의 여정, 거룩한 여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빈첸시안 가족 역사의 기원이 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 시기에 루이즈는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남편을 떠나 철저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헌신해야 하는가? 누가 자신을 영적으로 동행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혼은 정말 불멸할까?

다음은 루이즈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양피지에 쓴 글입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거룩한 미사 중에 혹은 기도하는 중에 나의 마음 속에 있던 모든 회의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나는 남편 곁에 있어야 하고, 때가 되면 청빈, 정결, 순명 서약을 할 것이며 나와 같은 길을 가는 한 공동체에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는 내가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해했지만, 이렇게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번잡한 곳에서 어떻게 이웃을 도울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영적 지도신부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기로 했는데, 하느님이 적당한 분을 저에게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영적 지도신부로 받아들이기는 싫었습니다만, 나는 묵묵히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때 나는 아직 영적 지도신부를 바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나의 세 번째 의문은 나의 정신적 확신에 의하여 제거되었지요. 그 확신이란 이러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이는 바로 하느님이고, 또한 하느님의 존재를 믿음으로써 나는 그 밖의 다른 것을 의심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표현과 21세기의 문맥상 다소 모호해 보일 수 있는 이 메시지를 어떻게 해독할 수 있을까요?

1623 6 4일 이전, 루이즈 드 마리약은 실존적 질문들에 시달려서 마음이 쇠약해져 있던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깊은 원의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응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루이즈는 자신이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부름 받았다는 직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누구와 함께, 어떻게?

남편에 관한 질문은 분명히 자신이 받은 세례를 더 잘 살기 위해 좀 더 나아가고자 하는 갈증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녀에게 먼저 결혼 생활과 아들을 키우는 일에 헌신하라고 속삭입니다. 루이즈는 일단 어떤 일에서나 적당하게 자신을 투신한다는 것에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성격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나갔고 초기 수녀회 수녀들과 동행하며 성령께서 그녀에게 영감을 주셨던 것들을 실현해 나가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6 4일 그날, 루이즈가 깨달은 것입니다, 즉 때가 되면 새로운 일에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지요.

이를 위해 루이즈는 자신이 언젠가 서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이 있는 곳에서나 그 외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봉사하도록 이끄는 구체적인 사명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출생 전 태아胎兒의 상태처럼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친밀하게 다가오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이웃을 도우려는행동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유대는 이미 명백했습니다.  "들어오고 나가는coming and going"는 것에 대한 직관은 사랑의 딸회가 지닌 봉사의 필수적인 특징이 됩니다.

영적 지도자에 대한 선택도 정서적 혼란을 초래한 또 다른 원인이었습니다. 루이즈 내면의 평화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녀는 그분께 순명하는 것이 내적 자유의 원천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의 메시지는 육화적 영성의 초기 표징입니다. 루이즈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과 인간 본성을 어루만지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어떤 봉사도 할 수 없으며, 가난한 사람의 얼굴은 바로 고통받는 종이신 그분의 얼굴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2023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받은 모든 것들에 대해 양적으로나 수적인 면에서 감사하고 무엇인가를 더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과 카리스마에 좀 더 일치하는 데서 좀 더 기뻐하고 이를 더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령 강림의 뤼미에르Lumiere [] 400주년은 그 성령의 빛이 성녀 루이즈에게 부여되어 대대로 전해졌기 때문에 성녀 루이즈와 함께 기도하고, 교회로서 특히 고통받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오늘날 세상에 필요한 본질적인 것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성녀 루이즈의 전기와 글을 다시 읽는 것은 우리를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성녀의 생각과 행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날 새로운 것을 만들도록 재촉합니다. 우리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조건은 빈첸시안 가족의 한 지부branch로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현장에서 구체적인 만남을 통해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세 가지 길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경청의 길, 선교적 담대함의 길, 신뢰의 길.



l  경청의 길


성녀 루이즈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 빈첸시오와 수녀들을 경청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시대적 필요와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영적, 선교적 힘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세심한 귀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개방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여성의 모델입니다.

"저는 우리 영혼이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 주님의 선하심을 간청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거룩한 사랑의 불로 불타서,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한 뜻을 사랑하게 할 이 완전한 사랑에 여러분이 소멸될 수 있기를 간청합니다.” (16515, 영적 저술, 353L.429)

우리의 계획 중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숨결에 열려 있지 않거나, 세상의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는 수행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존재와 행동 방식은 겸손 없이는 힘들고 불가능합니다. 이는 스스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변화하고 심지어 충격을 받는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없이, 그리고 다른 사람 없이 다른 사람 없이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취약하거나 빈곤하거나 여러 형태의 빈곤으로 고통받는 남성과 여성 등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 잘 귀 기울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께서는 모든 사람, 특히  보잘 것 없는 작은 이들 안에 계시므로 삶과 복음에 대해 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이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을 일상 생활에서 더욱 습관적인 방식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즉 선교사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행동하기 전에 기도하고 행동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경청의 길로 함께 출발합시다.



l  선교적 담대함의 길


성녀 루이즈는 당시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성 빈첸시오와 함께 그녀는 편견과 비난이나 궁정의 부유층과 교회의 특권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선 단체를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기심을 제거해야 합니다. "(1648 8 29, 영적 저술, 260, L. 217).

선교적 담대함은 빈첸시안 가족에게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각 지부branches의 기원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 때때로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요. 어떤 것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어떤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담대함에는 분별력, 선견지명,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선교의 담대함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대담하게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 빈첸시오와 성녀 루이즈처럼 상황에 맞는 적당한 현지 사업을 통해 항상 해왔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담하게 실험하는 것입니다.

지역사회와 단체의 구성원들이 극심한 빈곤과 불의의 희생자인 인류의 형제자매들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주변부로 갈 때 이미 선교의 담대함은 발생합니다.  우리 함께 선교적 담대함의 길을 계속 걸어갑시다.



l  신뢰의 길


루이즈 성녀는 지상에 내려오신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의 삶을 걸었습니다. 신적 생명이 자신을 채우도록 했고, 삼위일체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가졌습니다. 종종 수녀들에게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그 무엇도 잘못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우리를 가까이하시는 하느님 성령의 숨결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평화롭게 살라고 조언했습니다.

"내가 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주님은 항상 신중함보다 더 강한 확신을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 그리고 필요할 때 이 확신은 눈에 띄지 않게 신중함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1656 8 8, 영적 저술, 519, L490).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침묵 안에 기도하며, 경험을 나누고, 가난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자양분을 얻어야 하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사실 신뢰는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도 포함됩니다. 

신앙, 걱정거리, 우리 형제 자매들이 겪은 많은 고통에 대한 우리의 분노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서로를 신뢰합시다. 하느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이며 이는 또한 빈첸시안 가족 안에서 형제애적 우정을 쌓는 것입니다. 

신뢰의 길로 함께 출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경청, 선교적 담대함, 신뢰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도전 과제입니다.

- 진정한 대화보다는 독백을 선호하기 때문에 경청의 부족, 그리고 거기에다 정보 과잉으로 인해 내면의 삶이 혼탁해질 위험까지 추가해야 합니다. 

-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비된 대담함, 민족주의적 접근 방식과 우리 같은 사람들 사이의 자기 분리의 유혹, 창의성과 관대함에 대한 장애물.

- 교활하게 사회와 우리 마음속에 스며드는 의심에 의해 억눌린 신뢰.

성녀 루이즈는 우리에게 그 반대를 가르치고, 예수님처럼 봉사하기 위해 주님을 향해 단호하게 돌아서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개방하라고 초대하며, 형제자매, 나그네, 병든 사람, 노숙자 등을 함께 맞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유롭게 내면과 외면의 공간을 자유롭게 확보하라고 합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섬기기를 원하는 영혼은 그들 안에 성령이 오실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들 안에서 아무런 저항도 발견하지 않으신 그분께서는 그들의 유일한 것이 되어야 하는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성향을 주실 것이고...... 성령께서는 그러한 성향을 가진 영혼들에게 들어가실 때 분명히 힘을 부여함으로써 거룩한 사랑의 법을 세우실 것입니다."(영적 저술, 802, Cf. A.25).

각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 역사 및 삶을 가진 각 지부branch에 진정으로 투자하면 함께 발전하고, 위험한 곳에 이르러 성 빈첸시오와 성녀 루이즈의 방식으로 형제 자매의 "작은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 무조건적으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봉사에로 향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신뢰하실 만큼 담대하시니 기도하고 행동합시다.

 

사랑의 딸회 프랑스와즈 프티뜨 Francoise Petit 수녀

 

   

 

▣ 번역: 사랑의 씨튼 수녀회 안민아 마리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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