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사순절 메시지 로마, 2026년 사순절 지금 그리고 영원히... 깊은 겸손으로 친애하는 빈첸시안 가족 여러분,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우리는 교회의 삶에, 눈을 들어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쇄신하라는 초대처럼 스며들었던 ‘희망의 희년’을 마치고 거룩한 사순 시기에 들어섭니다. 이번 희년은 희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로마 5,5)을 재발견하도록 요청받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희망은 하느님의 충실하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화해와 자비, 헌신의 구체적인 길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희망의 지평은 우리 영성의 현시점에 특별한 빛을 비추어 줍니다. 전교회(Congregation of the Mission) 창설 400주년 (2026년 4월 17일)의 마무리에 이르러, 우리는 그 기억을 미래의 원천으로서 살아있게 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백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향수에 젖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 빈첸시오 드 폴을 통해 성령께서 이루신 일들에 우리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열매를 맺고 특히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복음적 희망의 신뢰할 만한 표징이 될 수 있을지 식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서한을 통해 저는 빈첸시오 가족 여러분 각자에게 다가가, 사순절 여정이 개인과 공동체의 쇄신된 회개의 기회가 되고, 우리에게 맡겨진 선교 사명의 미래를 잉태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선택의 길을 열어주기를 바랍니다. 저는 빈첸시안 가족으로서 사순절 여정을 잘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성 빈첸시오의 두 가지 가르침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지구상에서 예수님의 사명을 지금 그리고 영원히 지속하는 것'과 '깊은 겸손'입니다. 성 빈첸시오는 전교회 사제와 수사들, 그리고 사랑의 딸회 수녀들에게 예수님의 사명을 지속하도록 거듭 권고하셨습니다. "이 회(Company)의 목적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한 우리 주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이 회가 주님의 행동 방식, 주님이 하신 일, 주님의 직무, 그리고 주님의 목적을 모델로 삼기를 열망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주님의 사명의 연장선이며, 적어도 그 상황에 있어 주님과 유사합니다." (CCD XII, 67 및 71; 전교회의 목적에 관한 195차 훈화, 1658년 12월 6일). "현재 우리의 의무는 하느님께서 이 회에 베풀어 주신 은총, 즉 그분의 아드님이 시작하신 사명을 지속하는 상태로 부르시고 가난, 정결, 순명이라는 동일한 무기를 사용하게 하신 것에 대해 감사드려야 할 이유를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아드님과 사도들의 사명을 지속하기 위해 이와 같이 그분께 봉헌된 상태에 우리를 두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우리가 말한 감사 이유들에 무엇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 오 나의 구세주여, 당신께서는 당신의 아버지가 세상에서 수행하도록 당신을 보내신 그 사명을 명시적으로 지속할 것을 고백하고, 당신이 하신 것과 똑같은 수단인 가난, 정결, 순명을 지키겠다고 고백하는 한 회를 당신 자신을 위해 일으키시기까지 160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오 우리 영혼의 구세주여, 당신께서 사람들의 회개와 당신의 사명을 지속하기 위해 사용하고 계신 이들을 굽어살피소서..." (CCD XII, 298, 302, 306; 서원에 관한 216차 훈화, 1659년 11월 7일). "그와 일맥상통하게,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 즉 주님의 사명을 지속하고 영혼들의 회개를 위해 일하도록 부르신 우리에게 규칙은 가난을 실천하라고 말합니다." (CCD XII, 308; 가난에 관한 217차 훈화, 1659년 11월 14일). "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시어 당신 아드님께서 이 지상에서 하셨던 일을 계속하게 하셨으니 얼마나 행복 큰 행복입니까!" (CCD IX, 50; 병자 돌봄에 관한 9차 훈화, 1642년 3월 9일). "최근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가난한 시골 여성들의 모임(여러분 대부분이 그러하듯)을 마련해 주시어 당신의 아드님이 지상에서 사셨던 삶을 지속하게 하셨음을 묵상하십시오." (CCD IX, 103; 규칙 설명에 관한 15차 훈화, 1643년 6월 14일). "우리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상태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한 영혼이 주님이 지상에서 사셨던 삶을 추구하는 것을 보시며 그분이 느끼시는 기쁨을 여러분이 이해할 수만 있다면!" (CCD X, 173; 가난에 관한 76차 훈화, 1656년 8월 20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형제자매들, 특히 가장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온전한 헌신 속에서 삶을 사셨습니다. 성 빈첸시오 드 폴은 그리스도를 가난한 이들의 복음 선포자, 즉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며, 쓰러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역사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가시화하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신 분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빈첸시오에 따르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단순히 고립된 행위를 모방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분의 방식을 채택하고, 그들의 고통에 마음이 움직이며, 활동적이고 겸손하며 창의적인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빈첸시안 가족에게 있어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신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움직이게 하시고 성 빈첸시오를 고취하셨던 동일한 성령에 의해 인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성령은 우리를 가난한 이들에게로 이끄시는데, 그들을 원조의 수혜자로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속해서 드러내시는 곳으로 이끄십니다. 이러한 만남 속에서 빈첸시안 영성은 어떤 삶도 버려진 것이 아니며 어떤 상황도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님을 선포하기 때문에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전 지구적 불평등으로 특징지어지는 21세기 오늘날에도 주 예수님께서는 관조적인 관점을 발전시키고, 희망을 생성하는 친밀한 관계와 협력적이고 지성적이며 조직적인 자선을 실천함으로써 우리가 사랑의 신비주의를 살아가도록 초대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신뢰를 경험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분은 연약한 남녀인 우리에게 복음 선포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돌봄, 그리고 세상 속에서의 그분 사랑의 증거를 맡기십니다. 이 신뢰는 우리를 앞서고 능가하는 신비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완벽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충실하심에서 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신뢰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만심이나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더 낫고, 더 충실하며, 더 깨어있다는 무언의 확신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 권력이 될 때, 카리스마가 배척하기 위해 쓰일 때, 혹은 소속감이 친교 대신 거리를 만들 때 그것은 심지어 심판이나 굴욕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 주님의 신뢰는 배반당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것을 형제자매들을 세워주는 대신 우리 자신을 드높이는 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대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1코린 4,7). 모든 선물, 모든 책임, 공동체에 맡겨진 모든 사명은 은총이지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선물임을 인식하는 것은 경쟁으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자신을 주장하려는 욕구를 억누르며,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봉헌 생활 공동체나 여러 활동 단체의 모임이 모든 것이 선물이라는 인식 속에 살아갈 때,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 또한 바뀝니다. 차이는 대립이나 지배의 이유가 아니라 환대해야 할 풍요로움이 됩니다. 권위는 서비스가 되고, 말은 경청이 되며, 사명은 공동 책임이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주님의 신뢰는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들어 올리며,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어줍니다. 그러면 주님의 신뢰는 모두를 위한 겸손의 학교가 됩니다. 성 빈첸시오 드 폴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덕'(CCD XI, 44; 겸손에 관한 36차 훈화 참조)인 겸손을 모든 참된 자선의 기초로 여겼습니다. 성 빈첸시오는 겸손을 자신의 전체 영성 생활의 초석이자 기초로 삼았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그 힘을 배웠으며, 그것을 그리스도의 인성과 일치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제시했습니다. 그의 말을 다시 읽어봅시다. "겸손을 위해 노력합시다. 특히 우리가 더 겸손해질수록 이웃에게 더 자비로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공동체의 낙원이자 모든 덕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근원이며, 바로 겸손이 그 사랑을 불러들이고 지켜줍니다. 겸손한 공동체는 마치 산에서 흘러내리는 수액을 오롯이 받아내는 골짜기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비우자마자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으로 우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진공 상태를 견디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CCD XI, 1-2; 선교사의 소명에 관한 1차 훈화). "... 이 미미한 회, 모든 것 중 가장 작은 이 회는 그 특성적인 덕으로서 오직 겸손 위에만 세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회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가치 있는 일을 결코 하지 못할 것입니다. 겸손 없이는 우리 자신을 위한 진전이나 이웃을 위한 유익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 구세주여, 당신의 특성인 이 거룩한 덕, 당신이 세상에 가져오셨고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 덕을 우리에게 주소서. 그리고 여러분은 참된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끊임없이 이 덕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진보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교만, 야망, 허영심의 모든 생각을 그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적으로 여겨 몰아내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나타나자마자 뿌리 뽑기 위해 달려들어야 하며, 어떤 틈도 주지 않도록 면밀히 감시해야 합니다." (CCD XI, 46; 겸손에 관한 37차 훈화). "... 겸손은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말과 모범으로 매우 자주 권고되었으며, 본회는 이를 통달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세 가지를 포함합니다: (1) 우리가 사람들의 경멸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2) 사람들이 우리의 결점을 알아차리고 그에 따라 우리를 대할 때 기뻐하는 것; (3) 우리의 개인적인 무가치함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혹은 우리 안에서 성취하시는 모든 것을 가능하다면 숨기는 것.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공로를 하느님의 자비와 다른 사람들의 공로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모든 거룩함의 기초이며 전체 영성 생활의 결속입니다. 사람이 이 겸손을 갖추면 모든 좋은 것이 그것과 함께 올 것입니다." (CCD XII, 161; 겸손에 관한 203차 훈화, 1659년 4월 18일). 희망의 희년과 전교회 창설 400주년의 마무리가 비추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순절 여정은 우리 소명과 사명의 본질을 상기시킵니다. 즉, 지금 그리고 영원히 예수님의 입, 예수님의 팔, 예수님의 발이 되어... 지상에서 그분 사명의 연장선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리고 영원히'라는 말은 빈첸시오적 신앙, 영성, 카리스마의 깊은 확신을 표현합니다. 즉,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영으로부터 태어난 것은 과거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도 살아있고 결실을 맺으며 활동적으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17세기에 성 빈첸시오 드 폴을 통해 교회에 주어진 카리스마는 수세기를 내려올 수 있는 복음적 힘을 가진 성령의 선물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초기 '지금'이 소진되지 않고 영원해진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섬겨야 할 가난한 이들이 있고, 선포해야 할 복음이 있으며, 구현해야 할 자선과 건설해야 할 공동체가 있는 한, 빈첸시오적 카리스마와 영성은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하며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깊은 겸손 안에서만 카리스마와 영성이 결실을 유지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오직 겸손 안에서만 그것들은 계속해서 쇄신되고, 역사에 의해 정화되며, 가난한 이들에 의해 도전받고 성령에 의해 재방향 지어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 되실 그날까지, 우리의 연약한 현재 속에 영원을 보존하는 것은 바로 이 겸손입니다. 이 회개의 시간을 주님의 성령께 맡겨드립시다. 그분께서 우리의 관점을 정화하시고, 우리 마음을 겸손하게 하시며,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우리의 기쁨을 새롭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순절은 더 단순하고, 더 복음 중심적이며, 훨씬 더 큰 사랑으로 불타는 삶을 향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 기도와 함께, 우리를 부르신 그분이 우리와 계속 함께 걸으시며 우리의 부족하지만 기꺼이 응답하는 인성을 통해 일하고 계심을 확신하며, 예수님의 파스카를 향한 여정에서 서로 동행합시다. 성 빈첸시오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 토마즈 마브릭, CM
개인적 성찰과 공동체 나눔을 위한 질문 1. 예수님의 사명 지속 * 우리 공동체나 협회는 오늘날 어떤 태도, 선택, 혹은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복음 선포자이신 예수님의 사명을 가시화하고 있습니까? * 우리는 진정으로 그분의 바라봄과 사랑의 방식이 우리에게 스며들게 하지 않은 채, 어떤 방식으로 '예수님을 위해 일하는' 위험에 빠져 있습니까? * 오늘날 빈첸시오 가족에게 맡겨진 사명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가 감지하는 성령의 새로운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2. 주님의 신뢰, 겸손의 학교 *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로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신뢰를 선물로 여깁니까, 아니면 특권으로 여깁니까? * 어떤 공동체나 그룹의 역학 관계 속에서 자만, 판단, 혹은 인정을 받으려는 갈망이 스며들고 있습니까? * 모든 것이 은총이며 우리에게 속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인식하면서 복음적 겸손 안에 머무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3. 오늘날 사랑의 신비가로 살아가기 * 성찬례, 기도,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엮여 있습니까? * 우리의 상황에서 어떤 형태의 가난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장소로서 우리를 가장 강력하게 부르고 있습니까?
* 더 협력적이고 조직적이며 예언자적인 자선 안에서 성장하기 위해 우리가 공동체로서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단계는 무엇입니까?
번역: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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